독일에서의 재택근무

my laptop and black cat

지난 3월 독일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며 집에서 근무가 가능한 직원들은 모두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11월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상황이 1~2년 정도는 더 갈 것 같고 그 후에는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될 것으로 보인다.

테크니들에서 전원 원격근무하는 기업인 깃랩(GitLab)이나 인비전(Invision)과 같은 내용을 다루었었고 다음 회사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곳으로 찾아볼 생각도 있었지만 일생을 어딘가로 등교 또는 출근하다 갑자기 생활방식이 바뀌었을 때 건강이나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출근을 하며 "매일 이렇게 일어나 걷고 열차를 타고 또 걷는 것이 나에게 기본적인 운동량을 주고 심리적인 영향을 줄텐데 이것이 없어지면 생활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문제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동경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외롭기도 하고 그렇게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라며 다시 출근하는 생활로 돌아온 직장 동료도 있었고 남편이 재택근무를 더 이상하고 싶어하지 않아한다며 미국으로 돌아간 동료도 있었다.

지금의 회사는 몇 개의 건물만을 사용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1/3 정도의 좌석만을 오픈해서 WeWork와 비슷하게 예약제로 원하는 사람들만 사무실에 출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팀원 중 거의 매일 출근을 하는 동료도 있고 일주일에 두세번 혹은 가끔씩 사무실로 나가는 친구들도 있다. 매일 가는 동료들은 집에서는 생산성이 나지 않는다거나 집과 일하는 공간을 분리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사무실에 가지않고 집에서 일하는 것에 더 만족하고 있다는 동료도 많으며 나도 이쪽에 속한다.

장단점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출퇴근 시간이 없어지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진 것이다.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합쳐 한시간 반정도였는데 하루에 그만큼의 여유가 더 생긴 것이다. 덕분에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어 출퇴근을 할 때보다 더욱 건강해졌다.

일과 시간 중 처리해야할 일이 있을 때에는 저녁에 일을 조금 더 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를 하면 사람이 없는 낮시간에 동내에 있는 농구대나 탁구대를 사용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집에서 일을하니 근무시간에는 일을 하고 시간에 맞춰 일을 마치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져 가능하면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일하게 된다.

회의를 위해 회의실이 필요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회의실을 잡는 것도 이동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고 더 의논할거리가 있는데 다음 사람을 위해 회의실을 비워주어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시간과 공간 제약없이 언제 어디에 있는 동료와도 쉽게 미팅을 할 수 있다. 헬싱키에 있는 동료와 회의를 했을 때는 "이제 헬싱키에 있는 동료나 베를린에 있는 동료나 다른 점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출근을 하고 한둘이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하는 동료보다는 물리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동료를 우선으로 의사소통 하기 마련인데 이제는 대부분이 재택이고 몇몇이 사무실에 있으니 회의를 하다 시간이 다 되면 사무실에 나가있는 동료들은 다른 공간을 찾기 위해 분리되고 집에서 일하는 동료들 끼리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재택근무를 하면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쉬워진 느낌이다.

출근을 할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과 깨어있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점이었다. 집에서 일을 하면 언제라도 옆방에 있는 아내와 고양이들을 보러갈 수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인이라 느낄 수 있는 장점은 마늘을 걱정없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식을 고집하는 편은 아니지만 마늘이 들어간 음식은 즐기는데 외국인은 그 냄새를 불편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어 조심하는 편이었다. 이제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아쉬운 점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회사에 있으면 이런 저런 이유로 작은 파티나 모임이 종종 있었고 그럴 때면 세계 곳곳에서 온 다른 팀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끔씩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다. 고양이들이 와서 방해를 한다거나 집안일 등으로 인해 일을 잘 못했을 때는 밤 늦게까지 일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하루종일 일만 한 것 같은 느낌이든다.

시행착오와 배운점

갑작스럽게 전원 재택근무가 시작되어 초기에 혼란스러운 점도 있었다. 첫 몇 주간은 다양한 뉴스와 사내 Q&A 등을 보느라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일과가 끝난 시간이 되었을 때는 한 일이 없는 것 같아 밤까지 일을 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주의를 분산시키는 채널을 최대한 줄이고 이메일 확인횟수도 줄이면서 차츰 일상적인 업무 패턴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잡지 않으면 업무 외의 대화는 할 기회가 없으니 초기에는 온라인 커피타임이 팀별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는데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특별한 주제없이 자연스럽지 않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대화가 피상적이 되고 보통 2~4인 정도로 쪼개지는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모두가 한 가지의 대화에 참여해야해서 어색했다.

업무 외의 일로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는 스터디 그룹이나 정보교류 모임이 성공적이었다. 만나기 위한 주제가 있으니 대화거리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개인적인 대화를 하다가 끊기면 원래 주제로 들어가면 되니 부담이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며 따로 사람을 만나지 않는데도 외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이와 같은 모임에서 충분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켜고 회의하는 것을 권장하는데 이것은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는데에 도움이 되었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으며 이야기 할 때 더 안정감이 느껴진다.

근무환경

사무실에서 노트북과 함께 사용하던 두 개의 모니터와 스탠딩 데스크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사무실 의자는 편안한 것이었지만 집에는 딱딱한 나무 의자 뿐이다. 회사에서 모니터와 의자를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하였지만 집에 사무실 모니터와 의자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보조 모니터가 없는 것이 생산성에 장애가 되어 고민을 하였는데 집 구조상 모니터를 자연스럽게 둘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개인 맥북을 모니터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다가 Luna Display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동글을 꽂으면 Wifi를 통해 영상이 전송되어 보조 모니터처럼 사용할 수 있다. 레티나 지원이 안되고 Wifi로 전송하니 화면이 끊길 때가 있지만 가끔 듀얼모니터가 쓰고 싶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 제품가격 $50에 미국에서 오는 배송비 $9였는데 지금 보니 제품가격이 $80으로 되어있다.

집에서 일하며 허리가 아프다는 동료를 가끔 보았다. 집에서 좋지 않은 자세로 혹은 편하지 않은 의자에서 장시간 작업을 하여 발생한 문제로 예상되는데 나는 다행히 그런 문제는 없었다.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운동량이 줄어 억지로라도 꾸준히 운동을 하려고 한 것과 소파나 침대 대신 의자에서 일을 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25분씩 끊어서 일하는 포모도로 기법으로 일을 하는데 25분간 집중을 하고 끝날 때마다 일어나 몸을 움직여 준 것도 도움이 되었다.

스탠딩데스크는 집에 놓고 싶을 만한 적당한 디자인의 제품이 없었다. 데스크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노트북을 얹었을 때 높이가 적당하면 되는데 그것이 없는 것이 아쉬워 집에 대용으로 쓸만한 것이 없나 찾아 다니다 하루는 적당한 크기의 박스가 보였다. 책상 위에 놔보니 사이즈가 딱 맞아서 박스에 종이를 덮어 스탠딩 데스크로 사용하고 있다. 가격은 말할 것도 없고 높이도 너비도 무게도 디자인도 만족하며 사용 중이다. 맨발도 서있으니 금방 무릎이 지치는 느낌이 들어 검색을 해보았더니 매트가 필요하다고 하여 사서 사용해보니 오래 서있기에 훨씬 편하다.

일반적으로 독일 집에는 밖으로 노출되는 발코니가 있다.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지만 퇴근 후면 밤이 되니 사용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집에서 일하며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빛이 부족해 우울해지기 쉬운 독일의 가을에 신선한 공기와 햇볕을 쬐며 일하는 것이 기분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

제대로 집중을 못한 날에는 일을 마칠 때 기분이 좋지 않다. 사무실에 있으면 일을 했든 안 했든 사무실에 있었던 것이 증명되니 사무실을 나서며 퇴근을 할 수 있는데 집에서 제대로 집중을 못하였을 때에는 일을 제대로 한 것인지 아닌지 결과만으로 확인이 되니 시간이 되어도 기분좋게 일을 마치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회사 노트북으로는 가능한 업무와 무관한 것은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는 물론이고 해커뉴스에도 접속하지 않는다.

일과 삶의 분리

집에서 일을 하면 일과 삶의 분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나의 경험으로 이것은 업무량이 얼마나 많은지 혹은 얼마나 압박을 받으며 일을 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새로운 프로젝트 출시가 있었는데 일정에 맞추기 위해 몇 주간 평소보다 열심히 일을 하였다. 자기 전까지 일을 하기도 하고 노트북을 덮었다가도 무언가 생각나 다시 열어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출시 후 일반적인 일정으로 돌아왔을 때는 평소 호흡대로 일을 할 수 있었고 일과 삶이 분리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근무량이 적은 나라 중 하나이고 일과 삶을 분리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혀있으며 일보다는 가족이나 개인의 건강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처음 독일에 와서 입사 후 사내 개인 핸드폰으로 업무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확인하다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첫 문장이 "가능하면 하지 마라. 일과 삶을 분리하라."였다.

지식노동자에게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과연 일이란 무엇인가? 샤워를 하며 문제를 생각하고 푸는 것은 일인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잠시 명상을 하는 것은 일인가?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저녁이나 주말에 공부하는 것은 일인가? 지식 공유를 위해 스터디 그룹 모임을 하는 것은 일인가?

일하다 마주친 어려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혹은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일과도 관련이 있는 학습을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일과 삶의 완전한 분리는 쉽지 않아보인다.

다만 일을 "근무시간 이외에도 원하든 원치않든 시간을 내어 꼭 해야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결국 일과 삶의 분리는 재택이냐 출근이냐가 아닌 그 회사가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회사의 관점

회사에서는 코로나 상황이 끝나도 재택근무에 대해서 이전보다 유연한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등 다른 큰 IT 기업들에서 재택근무 정책을 발표하고 있고, 작은 회사들도 생산성이나 성과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경험하고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곳이 많다.

새로 들어온 직원이 적응을 잘 못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재택 후 합류한 동료들을 보았을 때 시간이 지나면 어려움 없이 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 팀의 디렉터 조차도 재택근무 시작 후 합류해서 우리가 일하던 사무실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다. 이제 "우리 사무실" 같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는 감시나 통제보다는 신뢰, 자율성, 투명성에 가치를 두고 있어 재택근무와 코로나로 인한 시장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락다운과 재택근무가 시작되었을 때 경영진으로부터 받은 이메일에는 "집에서 일하더라도 일 처리를 제대로 해달라"가 아닌 "모두가 힘든 시기이니 서로에게 더욱 친절해달라"가 적혀있었다.

재택근무 후 생산성도 일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많은 직장인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며 코로나 상황이 끝난 후 출근 문화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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