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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보다 베를린인 이유

작년 9월 아내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독일 베를린으로 와 이제 일을 시작한 지 일년쯤 되었다. 여기 오기 직전까지는 비록 근무지는 한국이긴 했으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회사에서 이년 반 정도 일을 하였다. 여기에서 짧은 경험과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리콘밸리에 비해 베를린이 가진 장점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빛 축제

비자 지원 기업의 수 베를린:실리콘밸리 = 124:13

글을 쓰고 있는 2017년 10월 기준으로 스택오버플로에서 검색해보았을 때 구인 중인 기업 중 베를린에서 비자를 지원해주는 곳은 수는 124,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비자를 지원해주는 곳의 수는 13. 대략 10배가량 그 수가 많다. 해외에서 채용을 하려는 만큼 독일어를 요구하는 곳은 없다. (왜인지 글을 준비하는 약 일주일정도의 기간동안 115군데에서 124군데로 늘었다.)

비자를 지원해주는 기업 입사에 성공했다면 비자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 같은 경우 한국에서 입사 결정 후 비자 없이 베를린에 들어와 회사의 도움을 받아 비자 문제를 해결하였고, 무비자 3개월 기간 동안 구직을 하여 비자를 얻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4년제 학사 학위와 기본 수준 연봉 이상을 받으면 취득할 수 있는 블루카드라는 것이 있는데, 소지자는 일반적으로 5년이 걸리는 영주권 취득이 33개월 혹은 독일어 실력이 된다면 2년 안에도 가능하다. 블루카드를 소지할 경우 배우자도 일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특혜가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비자지원 기업 입사에 성공하더라도 매년 4월에만 비자신청이 가능하고, 신청 후 진행되는 무작위 추첨을 통과하지 못하면 미국내 입국할 수 없다. 추첨에 통과하더라도 10월이 되어서야 입국이 가능하다.

일과 삶의 균형,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

최근 구글 어시스턴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구글과 협업을 해서 구글 어시스턴트 독일 출시에 맞춰 앱을 개발해야 하는 업무였다. 일정이 빠듯하게 고정되어 있다보니 독일 온 이후로는 해본 적 없던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하였다. 입사 후 처음으로 리드하게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즐겁게 일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을 때 즈음에 팀 리드가 나에게 와서 이야기하였다. “초과 근무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 단위로 다 보상해줄 테니 근무한 내용을 적어서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보상을 받지 못하는) 초과근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주말 근무가 예정되어 있었던 주 금요일에는 나에게 와서 “주말에 근무하는 것이 괜찮겠어요? 괜찮지 않다면 나에게 이야기해도 됩니다.“라고 나에게 물어봐 주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기 워커홀릭이 많아서 거기에 맞춰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주말 새벽에 이메일이 오는 경우도 많다.”

이곳에서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업무시간 이외에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베를린 공원에서 책 읽는 청년

쉬운 커뮤니케이션

해외 진출을 생각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언어이다. 독일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이므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팀원 약 15명 중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미국에서 온 단 한 명뿐이다. 다들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 영어사용 중 단어가 잘 기억이 나지 않거나 문법적인 오류가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 서로 당연하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영어를 듣고 이해하기에도 더 쉽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듣는다면 부족한 발음이나 문법 때문에 오히려 이해가 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는 발음도 더 쉽게 들리고 표현도 쉬우니 소통하기가 더 수월하다.

다양한 문화에서 온 모험심과 포용력이 있는 동료들

현재 13명인 나의 팀 구성원들의 출신을 보면 포르투갈, 이집트, 벨라루스,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 프랑스,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독일이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다 보니 모두들 다양성을 존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팀 행사 후 피자를 시켜먹은 적이 있는데 피자 주문을 맡은 팀원은 고기가 들어있지 않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피자, 돼지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무슬림을 위한 피자 그리고 다양한 고기토핑이 있는 피자 세 종류를 주문한 뒤 이야기했다. “피자 중에는 채식주의자 피자, 돼지고기가 없는 피자,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먹는 사람을 위한 피자들이 있어요. 가리지 않고 드시는 분들은 조금 더 늦게 가서 피자를 드시기 바랍니다.”

다양한 문화는 단순히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대부분의 동료가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이나 기회를 위해 기꺼이 해외 진출을 할 만큼 진취적이라는 뜻도 가진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기는 열정 있는 동료들과 일할 수 있는 것은 멋진 일이다.

물론 실리콘밸리도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을 때 유색인종이 백인들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술산업의 37%가 외국 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개발자를 해외에서 수급하고 있는 독일만큼은 아닌 듯하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개발 생태계 feat. 브렉시트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 개 수준이었던 스타트업의 수가 지금은 2,500개가량으로 늘어났다. 물론 16,000개에 달하는 실리콘밸리에 비할 수준은 아직 아니지만 상당한 속도로 생태계가 커지고 있으며 투자자금도 들어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에게 “가난하지만 매력적인” 도시였다면 이제는 “그냥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다(From “poor, but sexy” to “just sexy”). 유럽의 테크 허브인 런던이 브렉시트로 인해 불안정해진 것도 베를린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덕분에 수많은 개발 관련 행사들이 베를린에서 열리며 Meetup 커뮤니티도 많고 다양하다. Meetup 행사에 가면 개발자들에게 회사를 홍보하고 싶어하는 후원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음식과 맥주를 맛보며 자리를 즐길 수 있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주최한 Machine Learning, AI and Chatbot 행사에 방문했었는데 그곳에서는 다양한 음식들과 수제생맥주를 제공하고 있었고, 주최측에서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오는 바람에 음식이 다 떨어져 미안하다며 급히 피자를 주문해주었다. 이와 같은 행사들이 대부분 무료이다.

페이스북 이벤트

도시 내외로의 접근성 그리고 유럽여행

베를린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해있는 도시이다. 전철, 트램, 버스가 자주 다니며 주말에는 24시간 운행을 하는 구간도 많다. 중심지가 집약되어 있어 출퇴근에 1시간 이상 들이는 사람이 많지않다. 상대적으로 낮은 집값도 접근성을 높여준다. 높은 임금을 고려하더라도 실리콘밸리라면 시내 중심에 집을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베를린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며 중심에서 30분 정도 거리만 나가도 집값이 많이 내려간다.

베를린에서는 프라하까지 기차로 4시간이면 갈 수 있다. 프라하는 물가도 저렴한 편이라 서울에서 부산 여행하는 것보다 싸게 여행할 수 있다. 그 외 파리, 로마, 빈, 암스테르담 등 대부분의 유럽 도시도 비행기로 1~3시간 이내에 방문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꽤 넓은 지역에 기업들이 분산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차가 없으면 살기 어려운 곳이다. 주변에 좋은 관광지들이 있지만 다른 나라로 가서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싶을 땐 긴 시간을 비행해야 가능하다.

베를린의 한 공원

복지와 고용안정성

독일에 온 후 몇 가지 검사를 받을 일이 있어 병원에 몇 번 갈일이 있었는데 한번도 돈을 낸 적이 없다. 마치 대학교에서 교수님을 만나 상담을 받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아내도 감기나 비염 등의 문제로 병원을 몇 차례 갔었는데 한 번도 돈을 내지 않았다. 병원의 모든 서비스가 무료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부분이 무료이다. 미국의 의료비 문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는 입사 후 일반적으로 6개월간의 수습과정을 거치는데 수습 기간 후에는 정사원되고, 정사원이 된 근로자를 해고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유연성이 높은 미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물론 베를린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흐린 날이 많아 일조량은 영국 런던과 맞먹고 겨울은 길고 추우며 습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기본적인 영어가 통하지만 독일어가 필요할 때도 많다. 열차가 서고 문제가 생겼다는 방송을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눈치껏 행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맛있는 맥주, 다양한 클럽, 예술문화, 풍부한 녹지 등 앞서 소개하지 않은 많은 장점까지 생각해본다면 베를린은 실리콘밸리의 매력을 넘기에 충분히 멋진 도시임이 틀림없다.

팀원 중 베를리너인 친구에게 “세계 어느 도시에 살아 보고싶어?“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꼭 다른 도시에 살아야해? 나는 베를린에 계속 살고 싶어. 다른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