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과 영어이름

독일회사의 이름 정하는 방식은 미국회사와는 달랐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갔을 때 이름은 피터(Peter)였다. 같이 갔던 친구가 미국드라마 히어로즈를 보고 제안한 이름이었다.

미국 스타트업에 들어가며 이름은 무엇으로 하고 싶은지 질문을 받았다. 피터를 할까했는데 이미 회사에 피터가 있었다. 열 명 남짓한 회사에서 이름 충돌이 나는 것은 원치 않아서 새로운 이름을 고민했다.

팀의 몇몇 한국인들이 이름의 중간자를 영어이름으로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그냥 '상'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거의 마음을 정했는데 아내가 말했다. "그럼 이름이 생리(Sang Lee)네?"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영어이름을 가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본인의 이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름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찾고 싶었다. 잠시 함께 일했던 친구 중 폴란드 출신의 Krzysztof(크리스토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에 (내가 보기에는) 랜덤으로 z가 들어가 있어서 도저히 스펠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다른 동료들도 그 친구 이름을 어려워했고 나는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이름을 찾아서 복사하는 것이 귀찮아 나중에는 kr;를 누르면 이름이 자동완성되도록 스니펫을 만들었다.

결국 미국 회사에는 아내가 추천해준 휴(Hugh)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나름 이름 끝 글자인 '현'과 비슷하고 쉬우며 이름 이미지도 괜찮아보였다.

독일회사에 입사할 때는 영어이름 물어보는 과정이 없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영어이름을 종종 쓰지만 유럽권에서는 대부분 알파벳을 쓰니 아무도 영어이름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영어이름을 따로 만든다는 사실을 들으면 놀라워 하기도 한다. "Bruce Lee(이소룡)나 Jackie Chan(성룡)이 본명이 아닌거 알아? 중국사람인데 그런 이름일리가 없잖아?"라고 이야기하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헉!"하는 반응을 보인다.

지금 다니는 독일 회사에서는 Sanghyun Lee로 등록되었다. 이미 이렇게 된거 "상현"으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처음 만난 동료에게 "Hi, I'm 상현."이라고 인사했더니 다들 오지 원주민 추장의 이름이라도 들은 표정을 지었다. 하루는 새로 들어온 직원들과 이름 외우기 게임을 하는데 나의 차례가 되어 이름을 이야기하니 진행하던 친구가 웃으며 사람들에게 "Good luck."이라고 한다.

교육기간에 같은 조 친구들도 나의 이름을 어려워했고 혹시 쉬운 버전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고민 끝에 앞으로는 Sang으로 나를 소개하기로 정했다. 다행이 아무도 성을 붙여 Sang Lee라고 부르진 않는다.

결국 호주에서 만난 친구는 나를 Peter로 이전 회사에서 만난 친구는 나를 Hugh로 기억하고 있고, 교육기간 에 만난 친구들은 Sanghyun, 지금 팀원들은 Sang이라고 부른다. 일관성을 위해서 이름에 따라 중간자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덧 1. 하루는 대만에서 온 다른 팀 친구를 만났다. 이름을 물어보길래 상현인데 이 외국인들에게 어려운 것 같아서 으로만 쓰고 있다라고 말해줬더니 그 친구가 말했다 "현 쉬워, 현아!"

덧 2. 일본 회사에 지원해 면접을 본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를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을 때였는데 리쿠르터가 영어로 이야기하는데도 나를 상이라고 부르는 점이 재미있었다. 이제 만약 일본 기업에 가게되면 상이 된다.

덧3. 영어이름이 짦은 것도 불편할 때가 있었다. Hugh는 발음이 You와 비슷해 종종 나를 부르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렸고 친구가 사용했던 Luke라는 영어이름은 종종 look과 혼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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