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11년간의 회고를 쓴 뒤 3년 만에 회고를 다시 한번 써보기로 하였다. 3년을 돌아보니 준비하던 것들이 한 단계 끝나고 한 번 사이클이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간 두 번의 이직을 하였고 한번의 정리해고와 이사가 있었다. 잡스가 애플에서 해고된 것이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의 정리해고도 꽤 행운이었다.
이번에도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회고를 쓰며 돌아보니 결국 내 삶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결정하는 것은 내 주변 사람과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느꼈다.
2021년은 2020년에 이어 팬데믹의 해로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휴가를 못가니 일 년에 주어진 30일의 휴가를 대부분 평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데 사용하였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포스팅을 한 해였다.
와콤 테블릿을 사서 오랫동안 생각만 해오던 웹툰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TCP형 인간 UDP형 인간 같은 경우 꽤 인기가 있어서 트위터 상단에 꽂아놓기도 하였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과 일하며 AI 업계의 데이터 작업 문제에 관련한 구글 논문과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 관한 논문를 읽고 리뷰를 써서 공유하기도 하였다.
목표는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곳에 취직하여 스페인으로 이사가는 것이었다. 베를린 생활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미 5년 이상 지내면서 충분히 경험하기도 했고 날씨와 음식에 지쳐있는 부분도 있었다. 일년에 반정도는 흐리거나 비가 오며, 평균적인 외식 음식의 질이 낮은 편이다. 신선한 해산물을 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문제였다.
자기 전 약간의 불면증으로 침대에 누워 한두 시간 정도 책을 보던 때가 있었는데 O'Reilly 덕분에 다양한 기술서적을 보며 소양을 쌓고 이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분산시스템, 마이크로서비스, 도메인 주도 디자인, 쿠버네티스, 네트워크 등과 관련한 책들을 주로 보았는데 당시 회사에서 마이크로서비스를 이용한 분산시스템를 다루고 있던 때라 실제적인 경험과 접목시켜 학습할 수 있었다.
Scala를 업무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Functional Programming in Scala를 동료들과 함께 학습하며 함수형 프로그래밍에 발을 담궈보기도 하였다. Scala는 한번쯤 배워볼만한 흥미로운 언어였고 함수형 프로그래밍 개념은 앞으로 개발자 인생에 계속해서 도움이 될 것 같다.
vim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지만 주로 자바 개발을 해왔던 터라 개발용으로는 쓰지 않고 있었는데 Scala를 시작으로 처음으로 개발에 쓰기 위해 vimscript를 배우고 다양한 셋업을 시작하였다.
vim에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니 제대로 셋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달 간 개인시간을 모두 vim 셋업에 투자하였다. 투자시간에 대비해 얻는 것이 적을 것이라 생각해 미뤄온 일이었다. 세달 정도만에 vimrc 깃헙 저장소에 500 커밋을 찍었고 배운점을 정리해 영어블로그 글을 하나 쓰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vimrc를 개선해서 지금은 1000 커밋을 초과하였다.
덕분에 지금은 개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구직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투자시간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력서를 준비하다보니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영어 블로그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현재 블로그는 커스텀 정적사이트 생성기를 이용해 만들어져 있는데 영어블로그를 추가하기 위해 사이트 생성기를 수정하고 웹툰 몇 개와 vimrc 관련 글을 작성하였다.
처음 블로그를 쓰기 시작한 것도 한국에서 이직을 준비하며 무언가 더 보여줄만한게 없을까 고민하면서였다. 이직은 여러모로 자극과 배움의 기회가 된다.
이직을 고려 중이던 상황에서 메타 리쿠르터로부터 재택근무가 가능한 포지션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메타에 있는 전 동료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하였더니 "추천을 해줄테니 절대 리쿠르터를 통해 지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레퍼럴 보너스의 힘은 강력하다.
메타는 꼭 가고싶은 기업은 아니었지만 갈 수 있다면 한번쯤 일해볼만한 훌륭한 기업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인터뷰 프로세스가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니 최소 몇달은 준비를 해야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6년간 구직자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본적이 없으니 목인터뷰를 통해 연습하고 라이브코딩도 준비해야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직을 준비하던 중 스타트업 리쿠르터에게 매력적인 조건으로 연락이 왔다. 인터뷰 연습이라 생각하고 지원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리쿠르터와 연락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회사가 아일랜드 핀테크 스타트업 Wayflyer였다. 최근 많은 투자를 받아 유니콘이 되었고 앞으로도 높은 성장가능성이 있으며 스톡옵션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기대 연봉에 대해 묻길래 대략적인 정보를 이야기한 후 혹시 스페인에 가게 되면 연봉이 바뀌는지를 물어보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답을 들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로 모두가 몰리듯이 유럽에서는 경제상황이 좋은 런던, 파리, 뮌헨, 암스테르담, 베를린 등으로 개발자들이 몰리는데 그 외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과 같은 곳은 급여가 형편없이 낮은 편이다. 물론 집값이나 생활물가가 상대적으로 낮긴 하지만 그런 것들을 고려하더라도 낮아서 음식도 맛있고 날씨도 좋은 곳에 살던 사람들이 굳이 흐리고 먹을게 없는 도시들로 몰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연봉의 변화없이 더 살기좋고 물가가 저렴한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기술적으로는 Python을 사용하는데 꼭 Python 경력이 많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동안 백엔드 개발은 주로 자바나 스칼라와 같은 JVM 언어를 사용해왔지만 좀 더 가벼운 Python 같은 언어로 넘어가고 싶었던 나에게는 큰 장점이었다. Python을 사용해보긴 했지만 장고나 플라스크 같은 백엔드 프레임워크 경험은 없었고 간단한 통계나 데이터 사이언스 혹은 스크립팅 용도로만 사용해본 상태였다.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사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이런 스타트업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근무환경과 조건을 제시한 다른 기업에서 연락이 왔는데 AI 스타트업 Synthesia였다. Python 백엔드이지만 Python 경력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고 재택근무이며 나라를 옮기는 것이 연봉과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최소 Wayflyer를 위한 인터뷰 연습이라도 되겠다는 생각에 채용 과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두 군데 모두 대기업과는 다르게 라이브 코딩 대신 과제를 내주었고 과제를 중심으로 기술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보통 과제를 내어줄 때 과제 소개에 몇 시간 정도면 구현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나는 과제 결과가 채용의 성패와 연봉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평일 저녁과 주말을 모두 할애해서 구현, 테스트, 문서, 다이어그램까지 충실히 만들어 제출하였다. 둘 다 Python을 이용해 과제를 풀었는데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새로운 기술을 배워볼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스타트업이다보니 채용과정도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나는 최대한 내 페이스에 맞게 두 회사의 과제 시간과 두 회사의 결과 나오는 타이밍을 조절해가며 진행하였다.
지원자 입장에서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 회사에서 제촉하면 빠르게 해주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회사입장에서는 얼마나 빠르게 답을 주느냐 보다는 얼마나 매력적인 지원자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바심 내지 않고 상황을 잘 설명하며 진행하였다. 양쪽 회사에 두 군데에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투명하게 공유하였다.
시작은 Wayflyer부터 했지만 Synthesia가 더 빠르게 움직였고 과제도 먼저 제출하였다. 얼마 후 답장을 받았는데 아쉽게도 떨어졌다는 내용이었고 무엇이 긍정적이었고 무엇이 결정적인 문제였는지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메일이었다.
결과를 받고 나니 순간적으로 불쾌했다. 일주일 간 열심히 과제를 해서 냈는데 거절의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과제 설명이 충분히 명료하지않아 오해할만한 부분이었다. 어짜피 Wayflyer에 더 마음이 가던차라 그냥 접을까 고민했지만 마음을 잡고 왜 오해를 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이야기한 뒤, 그래도 여전히 거절이라면 흥미로운 과제 감사하다는 답을 보내었다.
채용과정 중 결과가 뒤집히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큰 기대없이 보낸 메일이었는데, 얼마 후 다음 인터뷰 날짜와 함께 답변이 왔다.
결국 Synthesia에서 먼저 오퍼가 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Wayflyer에서도 오퍼를 받았다. 둘 다 매력적인 회사라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결국 Wayflyer를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전에 누군가 실리콘벨리에서 여러군데 합격 후 서로 경쟁을 시키며 연봉을 상당히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미 마음이 정해진 상태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내키지 않기도 하였고 미국과는 달리 유럽에서는 개인간의 연봉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기 때문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Wayflyer측에 더 선호하는 기업이지만 고민이 되는 상황이니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주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락하겠다느 이야기를 하였고 그렇게 결정이 마무리 되었다.
한 가지 깨달은 점은 협상 시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회사 측에서 알아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인력을 데려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보상만 보고 선택하는 지원자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이유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제시해 주는 것이 상호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위한 더 좋은 방법이다.
입사한지 두 달 반쯤 지난 휴가를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노트북을 켰는데 갑작스러운 전사회의가 잡혀있었다. 내용에는 "모두가 참석할 것. 모두 재택근무할 것."이라는 불길하고 짧은 메시지만 있었다.
이전에 다녔던 잘란도에서도 다른 부서에서 몇 차례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항상 개발자들은 해고 대신 다른 팀으로 이동되었었다. 그 당시 상황상 구조조정을 예상하긴 했지만 여기도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회의에 참석하였다.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회사 인원의 40% 가량을 모두 내보내는 것이었다. 약 2~3년 사이에 급속도로 성장하며 일년 남짓한 사이에 거의 열배가량으로 직원이 늘었는데 갑작스러운 세계경제 악화가 금리를 높이면서 핀테크 회사에 직격탄이 된 것이다.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되는 회의 중에 Synthesia에 여전히 채용이 열려있는지를 확인하였다. 다행이 열려있었고 급하게 "혹시 나 이전에 받은 오퍼 지금 받아도 되니?"를 묻는 이메일을 작성하였다. 모든 것이 대략 정리 된 후 오후 4시쯤 이메일을 보냈는데 5시 전에 환영한다는 답을 받았다. 한창 스트레스 받고 긴장되어 있었던 상황인데 빠르게 답을 준 Gregor에게 여전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프로덕트 & 엔지니어링 VP인 Gregor는 내가 Wayflyer를 선택하였다고 했을 때 마지막까지 개인적인 경험까지 공유하며 Synthesia로 오라고 붙잡아주었는데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꽤 괴로운 일이었다. 언젠가 같이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답장을 하였지만 그 날이 이렇게 빠르게 오게 될줄은 예상하지 않았다.
Gregor는 처음 실제로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서 올 해 가장 잘 뽑은 직원 중 하나인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리더의 말 한 마디가 참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 말을 들을 후로는 그것에 부합하는 성과를 내기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11월에 Wayflyer에서 정리해고된 후 12월에 Synthesia에 입사하였다.
Synthesia에 입사 후 몇 가지를 깨달았는데,
두 곳에서 오퍼를 받은 것을 보고 혹시 대단한 실력자인가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오퍼를 받은 것은 처음이고 이전에는 항상 이직 때 마다 일 이년 간 여러 곳에서 거절을 당해왔었다. 독일로 오기까지 약 스무 군데 넘는 곳에서 거절을 당했고 대학 졸업 후 첫 입사 시에도 운 좋게 합격한 한 곳 덕분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직 과정에서 여러가지가 운이 좋았는데 면접과정에서 가장 도움이 된 것 중 하나는 잘란도에서 쌓은 면접관 경험이었다. 면접관으로 활동하며 면접에 대해 경험을 쌓고 다른 지원자 합격결정 여부를 위한 최종결정 시에 다른 면접관들과 토론하며 회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면접관으로 활동하는 것은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면접관 활동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회사나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고 그것에 성실히 임한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결과로 돌아온 것은 예상 이상의 성과였다.
메타는 내가 원한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기업도 아니고 결국 지원하지도 않았지만 혹시 지원을 했다가 합격을 하였어도 채용 취소가 되었을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2022년말 메타는 채용을 중단하고 제공되었던 오퍼까지 취소하여 전 직장 동료 중에는 오퍼를 받고 베를린에서 런던까지 이사갔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앞으로의 목표가 계속 좋은 기업에 다니며 경력을 쌓아가는 것이라면 메타는 좋은 선택이겠지만 나의 목표와는 맞지 않는 기업이다. 오히려 급여도 복지도 좋은 기업에 들어가 도저히 다른 선택을 하며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였다.
Synthesia 입사 시 이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 레퍼럴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 곳에서 6년을 일하던 때라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여전히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추천받는 것이 어려웠을텐데 마침 몇 달 전 메니저와 친하게 지내던 동료 두 명이 팀을 떠난 상태라 어렵지 않게 부탁할 수 있었다.
Gregor가 나에게 호감을 보여준 이유 중에 하나가 동료들의 고마운 레퍼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바로 전달되어서 나는 볼 수 없었지만 Gregor의 반응을 보았을 때 공들여 좋은 레퍼럴을 넣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첫 번째 거절메일에 대한 답변을 성의없이 하고 무시했다면 기회는 사라졌을 것이고 정리해고 후 곤란해졌을 것이다.
Synthesia에 입사할 생각없이 단순히 연봉을 올리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결국 다른 회사로 가버렸더라도 다시 연락해 뒤늦게 입사하는 것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혹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눈 앞의 이익이나 순간적이 감정에 좌우된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이 좋은 결과로 돌아온 것으로 생각한다.
2022년 말 ChatGPT의 등장 이후 ChatGPT를 vim에 연동해서 쓰기 시작하였다. vim 개발이 가능해지면 개발환경을 개발할 수 있게된다. 이미 만들어진 플러그인이 몇 개 있었지만 내 입맛에 맞는건 없었다. vim 스크립트와 Lua 스크립트를 이용해 GPT3.5 API를 호출하는 방식으로 개발하였는데 생각없이 마음껏 써도 한달에 50 센트 정도의 비용이 나왔었다.
GPT4가 나온 이후에도 유료 구독을 하지 않고 계속 내가 만든 스크립트를 이용하였는데 이번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GPT4 API의 비용은 GPT3.5에 비해 대략 20배 정도 비싼 가격이었다. 결국 구독을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 웹검색, DALL·E 3, 이미지 인식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어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주로 개발과 영어 학습에 도움을 받고 있는데 최근에는 독일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독일어 학습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Synthesia에서 근무는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어느 개발회사를 가든 대체로 비슷한 업무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팀이나 회사마다 조금씩 변형은 있지만 보통 2주 스프린트, 플래닝미팅, 일일 스탠드업, 데모, 회고미팅 등을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Synthesia에서는 불필요한 미팅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필요한 업데이트는 주로 글이나 문서로 대신한다. 그래서 미팅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아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데, 방해받지 않고 긴 시간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미팅 없이 집에서 일하니 업무시간도 유연하게 활용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찍 깬 날은 집중력이 좋은 아침에 일을 하고 나른한 오후에는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집중력을 가지고 일을 하는 식이다.
많은 직원들이 유럽 각국에 떨어져 일하다보니 분기에 한번쯤 모여 회의도 하고 파티를 하기도 하는데 회사 덕분에 하게되는 여행도 꽤 즐거운 부분이다. 일년에 한번은 전사 직원이 모이는데 작년 모임은 바르셀로나였다. 그 외 코펜하겐, 암스테르담을 다녀왔고 내년에는 프랑크프루트와 그리스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아직 개발자 수가 많진 않지만 회사에 들어온 후 지난 일 년간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개발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하였으니 올해의 목표는 스페인으로 이사였다. 어느 도시가 좋을지 선정하기 위해 발렌시아, 말라가, 바르셀로나, 알리칸테를 다녀왔고 결과는 적당히 물가와 도시발전의 균형이 잡힌 말라가로 하였다.
비자와 관련하여 회사와 대화를 시작하였는데, 예상보다 비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블루카드를 받으려면 스페인 회사에 다녀야하는데 우리 회사는 아직 스페인에 법인이 없으니 불가능했다. 스페인에서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제공하는데 노마드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 고용되어 있어야하고, 독일에서 블루카드로 계속 고용되어 있기 위해서는 독일에 거주하고 있어야한다. 결국 회사에서 스페인 법인이 생기거나 내가 EU 시민이 되지 않고서는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없었다.
스페인으로의 이사는 장기적으로 다시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집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주인은 재택으로 IT 쪽에 일하며 이탈리아에 살고 있었는데 작년부터 몰아친 IT 정리해고 열풍에 피해를 입고 구직을 하던 중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저히 좋은 연봉을 주는 일을 찾을 수 없어 독일로 들어와야하게 되어 집을 비워주어야한다는 연락이었다. 나의 정리해고는 쉽게 넘겼지만 집주인의 정리해고 여파는 강력했다.
우리는 급하게 다시 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베를린에서 처음 자리 잡았던 7년 전에 비해 렌트비가 거의 배로 오른 상태였다. 독일에서는 세입자 보호법이 강하기 때문에 세입자가 살고 있는 중에는 렌트비를 많이 올릴 수 없어 우리는 오래된 렌트비를 즐기고 있던 중이었다. 만약 지금 베를린에서 이사를 한다면 거의 두배의 렌트비를 내거나 훨씬 조건이 좋지 않은 집으로 들어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스페인에 못가게 되었을 때 대안으로 생각하던 켈(Kehl)이라는 독일 남부의 소도시가 있었다. 여전히 독일이라 날씨가 좋진 않지만 프랑스의 중소도시 스트라스부르와 붙어있어 프랑스 마켓에서 해산물이나 베이커리 등 질 높은 식료품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베를린에서는 700km쯤 떨어진 곳으로 기차로 두번 갈아타고 8시간쯤 걸려 가야하는 곳이다. 부산에서 북한 끝까지 가는 것보다 더 먼 거리이다.
급하게 2박 3일로 켈에 방문해 켈과 스트라스부르를 둘러보고 몇 집을 보았는데 운 좋게 바로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계약을 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는 짐을 싣는데 하루, 이동에 하루, 짐을 내리는데 하루, 총 3일이 걸렸다.
원격근무로 일할 수 있는 회사의 성공 사례를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원격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굳이 물가가 비싸고 복잡한 도시에서 살 필요가 없다. 원한다면 카페에서 일을 할 수 있고 휴가지에도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출퇴근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2018년에 테크니들에 전원 원격근무로 한해 117억원 수익 올린 ‘깃랩 GitLab’이라는 글을 통해 공유한 내용이다.
지금은 라인강 너머로 프랑스가 보이는 조용한 마을에서 일하며 지내고 있다.